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23개월 아기와 함께하는 슬기로운 음악 생활
해랑맘2025.07.28 06:26:20.4223개월 아기와 함께 하루를 보내는 나는 매일 밤 작은 콘서트를 감상한다. 이제 말을 조금씩 배워 가는 아기의 노랫소리와 자그마한 손으로 만들어 내는 율동을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기는 날마다 배워 온 노래를 흥얼거린다. 엄마가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으면 아기는 화를 내기도 하고, (노래 맞추기 난이도는 쟁반 노래방 뺨친다. ^^;;) 엄마가 노래를 따라 부르면 흥에 겨워 아기는 돌고래 소리로 반응하기도 한다. 다음에는 또 어떤 노래를 따라 부를까? 매일밤 나와 남편은 아기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물개 박수를 친다.
이처럼 아기와 함께하는 하루를 보내느라 콘서트장에서 진행되는 프로페셔널한 무대는 엄마인 나에게 매우 사치(?)스러운 활동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아기와 함께하는 주말에는 CD플레이어를 재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요즘은 선물 받은 조성진의 모차르트 음반을 듣고 있는데, 피아노 소리가 들리면 아기가 피아노 장난감을 가리키며 제법 피아노 치는 흉내를 내곤 한다.
아기와 함께 음악을 들을 때는 복잡한 대중음악이나 화려한 오케스트라 음악보다는 잔잔한 물결 같은 음악이 아기와 나의 정서에 딱이다. (왜냐하면 아기의 돌고래 협연이 종종 출연하기 때문에...ㅎㅎ)
이번 주말에는 아기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연주를 들어 봐야겠다. 물론 2악장만...
여자 마법사의 등장에서부터 2500명의 관객이 떼창을 부르기까지
한화클래식 2025 ‘마법사의 불꽃’
빵러브2025.07.18 03:04:45.09이날의 무대는 한 편의 드라마이자 하나의 주문, 그리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고음악 공연의 대표 브랜드 ‘한화클래식’이 올해도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다. 이번 공연의 주인공은 프랑스의 소프라노 파트리샤 프티봉. 그녀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품고, 17-18세기 프랑스 오페라 속 ‘여자 마법사’ 캐릭터의 음악을 엮어낸 무대를 선보였다. 신화와 마법, 복수와 슬픔, 광기까지. 사랑의 다채로운 감정이 음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었다.
1장에서는 복수심에 불타는 메데이아의 분노가, 2장에서는 사랑에 빠진 그녀의 슬픔이 그려졌다. 이어지는 3장에서는 오디세우스의 사랑을 받고자 집착하는 키르케의 고통, 4장에서는 악령을 소환하는 마법 장면을 통해 마법사 특유의 사랑 방식이 드러났다. 각 장에는 바로크 시대 이후 잊혔다가 20세기에 재발견된 작곡가 샤르팡티에와 마레, 르클레르, 륄리 등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마지막 5장에서는 모든 감정이 비극으로 귀결되며, 라모의 광기의 아리아를 통해 격정적인 피날레가 완성되었다. 프티봉은 이 감정의 흐름을 오롯이 담아낸 표현력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타악기 연주자와 전투 장면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1인극의 한계를 연기로 유쾌하게 풀어내 인상적이었다. 또한 아마릴리스 앙상블과 예술감독 엘로이즈 가이야르의 섬세한 연주는 프티봉의 노래를 완벽히 뒷받침했다. 특히 5막의 텔라이라의 아리아 ‘슬픈 의식’에서 등장한 바순은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아름다운 음색을 내뿜었다. 이들의 연주 덕분에 단순한 아리아 나열이 아닌 하나의 음악극처럼 감정선이 유기적으로 흐를 수 있었다.
공연은 커튼콜 이후 더욱 특별해졌다. 프티봉은 서툴지만 정성스러운 한국어로 ‘아리랑’을 부르며 관객에게 감사를 전했고, 2,500여 명의 관객이 하나 되어 아리랑을 떼창했다. 마치 무대와 객석이 하나 되어 마법에 걸린 듯한 순간, 그제야 사랑이라는 감정의 무게가 깊이 스며들었다. 2,500명의 관객이 모두 하나가 된 이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음악의 마법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시도만으로도 이미 완벽
김남중 비올라 독주회 ‘완벽한 즉흥’을 다녀와서
호사2025.07.14 08:50:01.80살면서 비올라 독주회를 가게 될 거라는 생각을 그다지 해본 적이 없다. 비올라라는 악기는 역시 독주 악기라기보다 오케스트라나 앙상블에서 중간 음악대를 채워주는 악기라고 생각했었고, 그것만 잘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알게 된 이 공연이 국악 연주자-해금과 연극적인 요소를 담아서 진행될 것이라고 들었고, 흥미롭게 생각되어 공연을 보게 되었다. 비외탕의 비올라 무반주 솔로로 시작된 공연은 지영희의 해금 산조를 비올라와 함께 병주하였으며, 연주자 본인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연극 돈데보이의 한 장면을 재현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다. 프로코피예프의 발레극 <로미오와 줄리엣>이 편곡된 모음곡, 레베카 클라크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연주하면서 비올라의 기교를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소위 기교적이고 복잡한 연주도 보여줬다.
연주자가 ‘완벽한 즉흥’이라는 제목을 얼마나 고심해서 지었을지, 이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확연히 보여준 공연이었다. 중간 중간 전형적인 클래식 비올라 프로그램에서는 이 연주자가 얼마나 기량이 있는 연주자인지를 보여주었다. ‘즉흥’이라는 요소로 통합을 이끌어 각각의 프로그램에서 표현하려 노력한 것이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긴밀하지 못한 느낌이 드는 것은 분명했다. 해금산조 병주 공연에서는 비올라는 서서 연주하고, 해금과 장구는 앉아서 연주했는데 서로의 눈높이가 맞지 않아 병주의 느낌보다는 비올라 협연의 느낌이 들었으며, 해금이나 장구와는 달리 비올라는 보면대에 의지하여 연주되니 즉흥의 느낌이 들지 않았다. 중간 해설이 공연 분위기를 풀어주고 관객들이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었지만, 공연에 대한 정확한 의도나 설명이 별로 없이 프로그램을 소개해주는 정도여서 나의 의구심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공연이 재밌기도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어쨌든 매우 신선했다.
그럼에도 내가 이 공연에 대한 리뷰를 나누고 싶었던 이유는, 비올리스트 김남중은 정말 잘 연주하는 비올리스트였으며, 해설로써 관객과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새로운 시도를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는 점이었다.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가 뚜렷이 보였다.
최근 많은 독주회를 다니며, 과연 연주자들이 독주회를 진정으로 좋아서 하는 것일까? 그들에게 그저 숙제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가끔은 그 독주회를 가야만 하는 관객 역시 마치 숙제처럼 공연을 찾아간다. 그래서 그런지 어수선한 분위기와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은 덤이었다. 우리가 음악을 전공함에도 음악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가 이런 거 아니었을까? 내가 음악의 뒷얘기-나는 그것을 음악학이라 부른다-를 배우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런 이유였다. 음악은 숙제 같은 게 아니라 다 같이 즐기고 느끼고 공감해야 하는 것이다. 조금은 어설프고 촘촘하지 못했더라도, 이번 공연에서 모든 관객은 비올리스트 김남중을 기억하고 그의 다음 행보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다음에는 어떤 시도를 보여줄까? 완벽하진 못했을지라도,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영화보다 위대한 영화음악은 존재할까?
개인적 취향의 영화음악 플레이리스트
서의재2025.07.07 07:22:38.07잘 만들어진 영화음악은 음악만으로도 영화의 서사와 메시지,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더 나아가, 영화음악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 분야로서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1895년, 최초의 영화상영 당시에는 영사기의 소리와 밀폐된 상영공간의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영화음악의 시작이었습니다. 1933년 영화 <킹콩>에서는 영화의 후반부 장면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음악이 연주되었고, 이후 영화음악은 지속적인 음악적, 기술적 발전을 거쳐 개성과 실력을 갖춘 수많은 작곡가들과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음악을 공부하고 즐기면서 좋아하게 된 작곡가들과 그들의 색깔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대표곡을 개인적인 취향으로 한 곡씩 고른 플레이리스트입니다.
플레이리스트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eOYI9Gi8sb9XlHHLVV0KPbjTc1r61JTu&si=H1QTOJVC1tXt5z5P
플레이리스트 목록
1. John Williams - Theme From Schindler’s List (From “Schindler’s List”)
2. Jean-Yves Thibaudet - Briony (From “Atonement”)
3. Alexandre Desplat - The Shape of Water (From “The Shape of Water”)
4. Ennio Morricone - Chi mai (From “Maddalena”)
5. Thomas Newman - Define Dancing (From “WALL-E”)
6. Danny Elfman - Alice’s Theme (From “Alice in Wonderland”)
7. Hans Zimmer - Time (From “Inception”)
8. Junkie XL(Tom Holkenborg) - Storm is Coming (From “Mad Max: Fury Road”)
낯설지만 편안한 음악 여행
공연 ‘서리풀 고음악 오디세이: 스페인과 남미의 바로크 음악’을 다녀와서
호사2025.07.07 07:08:03.93‘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 후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10년간의 모험을 다루고 있는 그리스 서사시를 의미한다. 한국에서 고음악 공연을 계속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라는 것을 알기에 ‘고음악 오디세이’라는 공연명은 그런 점에서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5월 심산아트홀에서 진행된 첫 번째 공연 ‘스페인과 남미의 바로크 음악’을 다녀오고 나는 여러 생각에 잠겼다. 나는 스페인도 남미도 잘 모르더라. 두 곳 모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고 말도 할 줄 모른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낯선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고음악, 스페인, 남미, 바로크... 프로그램을 보고는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lanchas para bailar’ ‘Vuetros ojos tiene’. 무슨 내용인지 제목의 의미도 알 수 없는 곡들에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도 스페인어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던가.
그러다 공연이 시작되었고, 가사의 의미라든가 고음악이라든가, 조금은 낯선 음악이라는 것들 모두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그저 나는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음악가들은 연습할 때는 한껏 힘을 주어 연습을 하다가, 결국 연주 때는 한껏 힘을 풀어서 연주를 해야한다. 그래야 자연스러운 연주, 관객이 보기에 편안한 연주가 진행된다. 이 공연이야말로 그런 공연이었다. 연주자들 모두 최고의 기량과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연주에는 억지스러움이나 불필요한 힘 따위는 없었다. 모두들 춤을 추듯 살랑살랑 즐기고 있었다. 너무나도 낯선 주제의 공연인데, 그 어떤 공연보다도 편안했다. 연주자들의 표정에서 모든 것이 드러났다. 나는 여기 너희들과 즐기러 왔어! 맘껏 즐기고 가렴~ 정말 어려울 수 있는 음악을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는 ‘무지카 엑스 마키나’의 다음 모험이 기대되는 이유다.
파릇한 듯 점잖고 침착한 듯 생기 있는
Re-프로젝트 〈장단의 재발견〉
안경좌2025.06.30 06:29:40.29소리가 내게 줄 수 있는 감동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지난 6월 26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음악회 <장단의 재발견>은 그동안 내가 알아 온 그 감동의 경계를 또 한 번 허물었다.
이하느리란 이름을 처음 들은 건 (그닥 반가운 계기라고 하기 어렵지만) 누군가 그의 음악을 표절했다고, 동료 작곡가들이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했을 때다. 20대 일군의 젊은 작곡가들은 그의 음악을 표절한 작곡가가 이하느리의 음악을 베낀 것만이 아니라 표절 작품으로 상을 받은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여튼 그때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 이하느리. 그의 음악이 어떤지는 몰랐지만, 그 일련의 소동은 그의 이름을 내게 각인시켰다.
그런 각인이 <장단의 재발견>에서 들은 이하느리의 국악 관현악단을 위한 음악 ‘Unselected Ambient loops 25-25’로 덮어씌워졌다. 그의 음악은 국악기가 가진 소리와 에너지와 감응의 경계를 가뿐히도 넘나들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국악 관현악단의 무대 위에서 좀처럼 들릴 것 같지 않은 신선한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국악기에 꼬리표처럼 붙어 있던 정체성, 역사성, 가능성 같은 그 모든 배경이 순식간에 다른 감각이 되었다. 국악기를 향한 이해와 경험, 혹은 선입견 같은 것이 소거된 자리에는 그저 소리가 있었다. 이하느리의 소리가. 규범이나 격식, 과장이나 가식 없이도, 우아하고 세련되고 감각적인 소리가. 파릇하면서도 점잖고, 침착하면서도 생기 있는 소리가.
이하느리의 음악이 연주되는 약 40분 동안, 나는 즐거워하면서, 감격하면서, 소름끼쳐하면서, 벅차오르면서, 손끝 발끝을 살살 굴리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 작곡가의 음악을 ‘피켓팅’(피 튀기는 전쟁 같은 티켓팅) 없이 듣는 일이 미래에도 가능할까. 어쩌면 이것이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이하느리의 실황 연주가 아닐까. 뭐 좀 오버스러운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런 상상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기특하게도, 앞으로는 그 자리에 앉지 못할 나 자신을 딱하게도 여기게 만들었다.
앞서 언급한 표절 시비와 관련해서, 그는 누군가 그의 음악을 표절한 일에 관해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야 좀 이해가 간다. 소리는 베껴도 그 소리를 짓는 태도와 시간은 쉬이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 태도와 시간이 마침내 음악의 바탕이 되는 것이므로, 그리고 이것을 열 아홉의 작곡가 이하느리는 이미 깨우쳤으므로.
제자리를 맴도는, 작은 손끝의 움직임으로부터
로더릭 콕스의 지휘, 에마호이 체게 마리암 게브루의 피아노 음악
OKG2025.06.23 07:14:09.62우리가 누구의 음악을 듣느냐는 물음이 점점 더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지난 4월 30일, GS아트센터에서 윌리엄 켄트리지의 작업과 함께 쇼스타코비치 10번 교향곡을 지휘한 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지휘자 로더릭 콕스였다. 그 유려하고도 폭발적인 지휘를 보며, 이제 어떤 미래의 음악은 그의 손끝에 달려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뛰어난 젊은 지휘자가 이제까지 어떤 음악을 다뤄왔는지 살펴보던 차, 나는 조금 다른 이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일찌감치 집중하고 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곡가 윌리엄 도슨의 작품을 포함하여, 작곡가이자 연주자였던 플로렌스 프라이스 등, 그간 서양음악사에서는 완전히 간과됐지만 이 음악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이름들이었다.
언제까지고 반복되는 바흐부터 말러까지의 세계 안에 안전히 머무르는 것도 좋지만, 조금씩 무감각해지는 이 따옴표 친 ‘클래식’의 영역에만 언제까지고 있기 보다는, 그 바깥의 영역에서 제각각의 모습으로 전개되어온 다른 음악들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은 점점 더 커졌다. 에티오피아 정교회 수녀이자 작곡가였던 에마호이 체게 마리암 게브루의 음악도, 그런 바람을 품고 있던 중에 만난 반가운 이름이었다. 손끝으로 피아노 건반을 가볍게 건드리는 듯한 그 음악, 어디로도 발전하거나 멀리 가지 않고 가만히 같은 자리를 섬세하게 맴도는 그 음향은 읊조림을, 제자리걸음을, 때론 기도하는 듯한 중얼거림을 닮아 있었다. 유럽 전통의 피아노 음악에서는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움직임이었다. 대부분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어떤 리스너들은 그 독특한 아름다움에 매료됐고, 프로듀서들은 에마호이가 오래 전에 발매한 앨범을 다시 재발매했다. 서울에서도 6월 22일,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 작은 공연이 열렸다.
에마호이의 음악이 우리가 모두 귀기울여 들어야 하는 뛰어난 음악이라고, 반드시 놓쳐서는 안 될 고전이라고 힘주어 소개하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다. 그러나 이런 음악의 존재를 우리가 기억해보자고, 한번 정도는 힘주어 제안하고 싶다. 이 음악은 ‘피아노’라는 악기가 전 세계로 퍼져 각자의 음악문화를 만들어낸 또 다른 역사, 작곡하는 이들의 다채로운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상상은, 어딘가에서 지금도 소리 내어 연주하고 있을, 이름 없는 음악가들의 존재로 이어진다. 나는 이 작은 손끝의 움직임으로부터 다른 음악의 역사를 상상할 수 있는 작은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힘은, 서울에서 이 모든 음악을 듣고 만들고 있는 우리의 시간에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흔적을 남긴다.
현대음악 로드트립
10인의 전문가가 선물하는 음악 여행
문종인2025.05.12 01:38:18.83로드트립은 자동차 등을 이용해 장거리를 여행하며,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 여행 자체에 중점을 두며 도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다양한 경관과 지역, 문화를 경험하는 여행입니다. 이를 통해 즉흥적인 탐험과 발견을 할 수 있으며, 자연과 교감하기도, 내면으로 깊게 파고들며 자아 탐색을 하기도 합니다. 이 플레이리스트는 사람들이 현대음악에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제가 좋아하는 로드트립이라는 테마를 활용하여 엮어본 리스트입니다.
1. John Adams, Road Movies
긴 여정의 시작은 미니멀리즘을 기반으로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과 강렬한 리듬적 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존 애덤스의 곡으로 시작합니다. 곡의 제목처럼 도로를 달리는 여행의 시작점과 같은 설렘을 주는 1악장과, 깊은 밤 광활한 도로에서 멈춰서 잠깐 고독에 빠지는 듯한 2악장, 동이 터오며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 상쾌함을 주는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 Einojuhani Rautavaara, Cantus Arcticus, Op. 61
어느덧 핀란드의 북극 지방에 도착하게 됩니다. 핀란드 작곡가 에이유노하니 라우타바라의 곡인데요, 실제 새의 소리를 녹음하여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합니다. 마지막 악장의 백조들의 이주를 보면서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다 보면, 북극의 고요함 속에서 신비로운 새 한 마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3. Kaija Saariaho, L’Aile du songe
역시 핀란드 작곡가인 Kaija Saariaho의 곡인데요. 스펙트럴리즘의 영향을 받아 음색과 텍스처를 탐구하는 작업을 보여주는 그녀의 음악은 대체적으로 몽환적이며 서정적입니다. 플루트 협주곡으로 쓰여진 이 곡을 듣다 보면, 신비의 새를 따라 한번도 보지 못했던 정원과 끝없는 호수를 만나며 마치 현실이 아니라 꿈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는 나의 모습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4. Alva Noto & Ryuichi Sakamoto with Ensemble Modern, UTP
그렇게 새롤 쫓다 보면 캄캄한 무한한 어둠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네 번째 트랙은 독일의 전자음악과 시각예술을 결합한 형태의 작곡을 하는 알바 노토와 클래식과 전자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본의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공동 작업물인데요. 깊은 저음역에서 지속되는 울림 속에서 점처럼 퍼지는 전자 피아노의 반복, 아득히 멀리서 선처럼 퍼지는 현악기의 소리는 마치 아까 쫓던 새의 울음소리 같기도 합니다. 전자음향과 실제 악기 소리들의 산발적인 나타남과 사라짐은 현실과 초현실 사이 어딘가에 서있는 듯한 착각을 만들어 냅니다.
5-7. Osvaldo Golijov, Ainadamar
긴 어둠을 통과하여 맞이한 다음 장소는 스페인의 어느 광장입니다. 아르헨티나 작곡가 오스발도 골리호프는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 음악과 유럽 클래식 음악을 결합한 독창적인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강렬한 감정과 다채로운 리듬이 특징인데요. 그중 ‘아이나다마르’는 는 스페인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생애와 죽음을 다룬 오페라로, 플라멩코와 전통 스페인 음악의 요소가 강하게 들어있어 마치 스페인 내전의 풍경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시인의 삶과 죽음을 관찰하며 강렬한 내 안의 울림을 경험하실 수 있을 거예요.
8. Bernd Alois Zimmermann, Alagoana. Caprichos Brasileiros
이번에 도달한 곳은 브라질의 한 축제 현장입니다. 독일의 작곡가 베른트 알로이스 치머만은 복잡한 텍스처와 다채로운 음악적 어법을 탐구하는데요, 브라질의 전통 리듬이 돋보이며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치는 가운데,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과 라벨의 볼레로를 떠올리게 합니다.
9-10. Unsuk Chin, Gougalōn: Scenes from a Street Theater
브라질을 떠나오면 갑자기 서커스 현장이 나타납니다. 독특한 음색과 복잡한 리듬 구조로 유명한 한국의 작곡가 진은숙의 ‘구갈론: 거리극의 장면들’은 서커스와 유랑극단의 다양한 모습을 묘사하는데요. 피아노에 온갖 물건들을 껴서 특이한 음향을 만들어내고, 유리와 접시 등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깨부수는 등 비전통적 연주 기법을 통해 전에 해보지 못한 새로운 청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악장의 제목처럼 우울한 가수와 가짜 이빨을 가진 점쟁이를 만나는 것은 마치 우리의 여행 속의 예기치 못한 경험과 만남 같기도 합니다.
11. Steve Reich, Music for 18 Musicians
이제 서서히 여정을 마무리할 때가 다가오나 봅니다. 무수히 많은 건물들과 사람들이 지나가는 듯한 게 거대한 도시로 들어온 것 같아요. 서서히 발전하는 구조와 복잡한 리듬적 변주가 특징인 미국의 미니멀리즘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의 곡입니다. 파형처럼 반복되는 리듬과 멜로디가 도시의 역동적이고 복잡한 구조를 연상시키면서 시간의 흐름을 잊고 사는 우리의 모습이 보이게 됩니다.
12. Don Li, Different Zones(Jojo Mayer & Jack Quartet)
거대한 자연과 다양한 나라들을 돌아서 도시로 오랜만에 돌아왔으니, 클럽을 가봐야죠? 스위스의 작곡가 돈 리는 드러머 조조 마이어의 반복과 그루브에 관한 인터뷰 문장을 기반으로 미니멀리즘적으로 접근하며 음향적 공간을 탐험합니다. 거기에 연주자의 즉흥적인 변주까지 더해져 시공간을 탐험하는 듯한 이 곡은 마치 지금까지의 우리의 여정을 보는 듯합니다.
13. Valentin Silvestrov, The Messenger(For Piano and Strings)
클럽을 빠져나와 밖에 나오면 갑자기 마주한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죠. Postlude라는 개념을 확장하여 "음악이 끝난 후의 음악"이라 설명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Valentin Silvestrov 의 곡입니다. 후기 낭만주의적 요소와 현대 기법을 결합하는 독특한 사운드를 보여주는 그의 음악은, 음악이 끝난 후의 여운과 감정을 표현하는데요. 이런 독특한 음향은 과거의 회상 같기도, 다가올 미래의 환상 같기도 하며, 긴 여정 끝의 우리의 상태와 같습니다.
14. Danish String Quartet, Ye Honest Bridal Couple, Sonderho Bridal Trilogy Part I
드디어 긴 여정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방은 여행짐으로 어수선하지만 나의 시간들로 켜켜이 쌓인 이 익숙한 장소는 마음 한편을 따뜻하게 합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잠을 청하는 내 침대 위는 어색하여 지난 여행의 시간을 곱씹어. 보는데요. 마치 꿈처럼 벌써 희미해지지만, 왠지 앞으로 더욱 잘 지낼 수 있는 기분이 듭니다. 대니쉬 스트링 콰르텟이 직접 덴마크의 시골에 가서 현대적으로 편곡하고 연주하여 녹음한 덴마크 전통 결혼식 음악입니다. 약음기를 끼고 뭉쳐진 화음 위에 아련한 멜로디로 조용히 음악은 시작됩니다. 뭉쳐진 화음은 일정하게 작은 소리로 반복되며 연주되어, 불협화음으로 들리기보단 빛바랜 추억처럼 따뜻하게 들립니다. 후반부의 2박자 계열의 춤곡은 약박의 강세와 장식음들이 음악을 더욱 밝고 경쾌하게 만듭니다.
현대음악 로드트립
10인의 전문가가 선물하는 음악 여행
Muree2025.05.12 01:36:53.00Song of Songs, 영혼을 울리는 세계의 노래들
10인의 전문가가 선물하는 음악 여행
윤현종2025.04.28 04:29:06.09한동안 잊고 있다가도 불현듯 떠올라 다시 찾아 듣게 되는, 단골식당의 국밥 같은 노래들을 모아봤습니다. 여러 가지 소리를 듣고 만들고 공부하며 살아가는 저의 마음을 유독 묵직하게 흔드는 소리가 있다면 바로 인간의 몸을 통해 만들어지는 ‘노래’인 것 같습니다. 특히 연주자로서 인간의 목소리와 함께 연주할 때의 감각은 조금 더 내밀하고 특별한데요, 이 플레이리스트에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전해져온 노래들과 비교적 새로 만들어진 노래들을 한데 모아봤습니다.
울림이 좋은 동굴에서 서로의 신체를 접촉해 강한 공동체적 결속을 나타냄과 동시에 악기로 체화된 서로의 몸을 통해 가장 완벽한 정수비의 음정을 찾아 노래하는 사르데냐의 ‘Canto a tenore’부터 동양과 남미의 음악에 심취한 독일 음악가의 노래, 유럽 고음악의 거장 조르디 사발의 아들로 태어난 페란 사발이 부르는 스페인 민요, 류트로 반주되는 세르비아의 민요와 익숙한 듯 낯선 한국의 노래들까지, 나름의 맛을 가진 음악들을 다양하게 차려보았습니다. 오랜 세월 꾸준히 사람들에게 불려오며 전해진, ‘희로애락’의 네 감정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울림을 가진 음악이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발현되는 순간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Song of Songs, 영혼을 울리는 세계의 노래들
10인의 전문가가 선물하는 음악 여행
Muree2025.04.28 04:27:32.00질풍노도 사춘기 아이들을 위한 눈으로 듣는 클래식 – 음악학자 이향수
10인의 전문가가 선물하는 음악 여행
이향수2025.04.21 04:34:05.22질풍노도의 시기를 힘겹게 겪고 있는 중학생 딸아이를 키우며 또래의 친구들에게는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 저는 갱년기의 선생님입니다. 정서적 조절 능력, 충동 억제가 쉽지 않은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2병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스마트폰입니다. 아이는 스마트폰 안의 넓지만 작고 작은 세계에 갇혀서 화면 밖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맑고 풋풋한 학창시절을 추억하게 할 친구와의 우정을 게임에 빼앗기고, 끊임없이 울리는 sns 알림을 확인하느라 가족과의 식사 시간 소소한 대화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점점 더 자극적인 콘텐츠에 노출되고, 1분을 넘지 않는 쇼츠에 익숙해져만 갑니다. 그렇다고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을 빼앗아버리면 아이들은 부당하다고 느끼며 저항할 거예요. 엄마도 스마트폰을 두고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는 걸 아이들이 제일 잘 알거든요. 우리 아이들이 도파민 중독으로부터 잠깐 멈춤, 유익한 자극, 스마트폰 안에서 누리는 휴식. 저의 플레이리스트는 이런 간절한 바람과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언젠가 중학교 음악 감상 수업시간, 5분 내외의 하이든 현악4중주 작품을 들려주며 곡이 연주되는 잠시 동안만은 다른 감각을 제외한 청각에만 집중해보기로 한 적이 있죠. 예상대로 이 활동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낯설기만 한 클래식 음악을, 그것도 영상 없이 소리로만 들으라니. 아이들은 ‘귀로 듣는 음악’보다 ‘눈으로 듣는 음악’에 훨씬 익숙합니다. 그런 면에서 유튜브의 다양한 연주 영상들은 분명 아이들이 클래식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될 거에요.
무섭고도 슬픈 마왕 이야기, 발레로 ‘듣는’ 아름다운 왈츠. 저의 플레이리스트는 우선 아이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눈으로 듣는 음악들로 시작합니다. 하이든의 고별 교향곡과 같이 연주 영상을 통해 작품 스토리를 추리해 볼 수 있는 머리로 그리는 음악이 그 뒤를 잇지요. 익숙한 연주자와 익숙한 악기가 들려주는 초절기교 연주는 아이들의 몸을 들썩 거리게 만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온몸으로 음악을 받아들이게 될 거에요. 그리고 마지막은 사춘기라는 힘들고 불안한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가, 인생의 선배가 전하는 위로와 격려를 담은 가슴으로 이야기 하는 음악으로 엮었습니다. 반짝반짝 빛날 너희들을 응원해!
질풍노도 사춘기 아이들을 위한 눈으로 듣는 클래식 – 음악학자 이향수
10인의 전문가가 선물하는 음악 여행
Muree2025.04.21 04:16:23.00시간을 달리는 미니멀리즘 음악 – 음악평론가 이민희
10인의 전문가가 선물하는 음악 여행
이민희2025.04.14 02:05:42.71현대음악의 한 갈래로 시작해 대중 곁에 살아남은 유일한 장르. 미니멀 음악은 마치 재즈가 그러하듯 너무도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그 종류가 수없이 많습니다. 1960년대 말 뉴욕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유럽 음악과는 다른 전통을 만들고자 했던 젊은 작곡가들, 그리고 이들 주변의 락과 재즈 뮤지션들. 스티브 라이히와 필립 글래스의 성공을 필두로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클래식 미니멀리스트와 그 음악들. 유럽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또 어쿠스틱 음악에서 전자음악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앙상블로 나타난 이후의 포스트 미니멀 음악까지.
흥미로운 점은 이토록 다양한 미니멀 음악을 하나의 ‘가족’으로 묶을 공통된 특징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음악의 짜임새가 변하지 않으며 음악의 구성요소가 최소한으로만 사용되고, 끝없는 비트 위에 질주하거나 반대로 긴 지속음으로 나타난다는 점. 무엇보다도 이 음악은 리듬과 짜임새의 일관성을 전면에 드러내기에 시간을 한없이 늘리기도, 동시에 시간을 한없이 축소하기도 합니다. 이런 시간에 관한 독특한 감각 덕분에 미니멀 음악은 현대 사회의 배경음악으로, 보다 정확하게는 현대인의 노동요로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시간을 달리는 미니멀리즘 음악’ 플레이리스트는 비트 중심의 미니멀 음악에서부터 비트가 존재하지 않는 드론 음악, 클래식 미니멀리스트의 음악에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미니멀리스트의 음악까지를 두루 담고 있습니다. 글래스, 라이히, 테리 라일리, 한발 더 나아가 마이클 니먼과 존 아담스는 잘 알려진 미니멀 작곡가지만, 윌리엄 둑월쓰(William Duckworth), 케빈 볼란스(Kevin Volans), 데이비드 보든(David Borden)의 이름은 낯섭니다. 이어서 제임스 테니(James Tenney)와 엘리안 라디그(Éliane Radigue)의 드론 음악은 소리에 관한 새로운 접근을 보여주는 수작이며, 알바 노토(Alva Noto)와 코스텔로(Donnacha Costello)의 음악은 비록 일렉트로니카 계열로 분류되지만 그 미학과 속성이 미니멀 음악의 오리지널리티를 관통합니다. 세귀니어(Raphaël Séguinier)의 음악은 드론과 비트를 동시에 능숙하게 다루는 예이며, 라일리의 일부 음악은 아르테사중주의 편곡버전으로 그리고 라이히의 음악은 벨루카(Veluka)의 리믹스 버전으로 제시되었습니다. 모든 음악은 연속적인 흐름을 해치지 않도록 비트의 유무 및 음악적 연관성 등을 고려하여 점진적으로 배열되었습니다.
시간을 달리는 미니멀리즘 음악 – 음악평론가 이민희
10인의 전문가가 선물하는 음악 여행
Muree2025.04.14 02:01:31.00멜랑콜리, 슬픔을 넘어서 – 리코더 연주가 김규리
플레이리스트 선곡 노트
김규리2025.03.17 03:14:53.11‘멜랑콜리, 슬픔을 넘어서’는 멜랑콜리라는 소재로 작곡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성악곡, 기악곡 등을 모아놓은 플레이리스트입니다. 고대로부터 멜랑콜리는 철학적이거나 병리학적 맥락 안에서 기질, 기분, 심적 상태, 신체적 증상 등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되어 왔고,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멜랑콜리는 영감이나 천재성과 연관되어 음악에도 여러가지 구체적인 작곡기법과 연계되어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는 인간의 불안감의 표출인 동시에 창작의 원천으로 자리해왔고, 가사가 수반된 노래나 극음악부터 추상적이고 자유롭게 표현되는 판타지아, 또는 소나타 형식의 기악음악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멜랑콜리로 취급되는 눈물, 밤, 어둠, 슬픔, 고독, 상실, 나아가 기쁨, 걱정, 연민 등 다양한 감정은 (*당시의 역사와 문화에 밀접한 관계가 있고 여기엔 더 깊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여러 형식의 음악 안에서 불협화음, 반음계, 조바꿈, 템포와 음역의 급격한 변화, 박자와 화음의 이탈, 즉흥성과 예측불허의 진행 등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대변해왔습니다. 멜랑콜리에 관한 작품들은 작곡가에 따라, 그리고 문화적 맥락, 장르, 작곡기법, 악기와 음향에 따라 정말 무수히 많은 사례가 존재하고, 이 플레이리스트를 꾸리는 데에는 개인적인 취향이 담길 수밖에 없었음을 양해바랍니다.
이 플레이리스트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에 멜랑콜리를 상징했던 류트, 부드럽고 애처로운 음색으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비올라 다 감바, 리코더, 트라베르소, 르네상스 하프와 바로크 시대의 건반악기 하프시코드, 그리고 오래된 시에 붙은 세속 노래들까지, 다양한 구성의 멜랑콜리 음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고요한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여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멜랑콜리, 슬픔을 넘어서 – 리코더 연주가 김규리
10인의 전문가가 선물하는 음악 여행
Muree2025.03.10 07:15:13.00태어난 김에 바로크 일주
뮤리 살롱 세 번째 모임, 음악가 윤현종을 만나는 시간
이미라2025.02.03 06:07:29.77연주자가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연주하면 우리는 연주자의 음악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시골에서 자라 공대를 진학한 후에 음대의 존재를 알게 되어 기타 전공으로 다시 입학한 윤현종은 서양음악사와 종족음악학 수업에서 신세계를 봤다고 한다. 고음악부터 민속음악, 전자음악 그리고 희한한 각종 악기들을 다루는 그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 같았다.
마치 붓으로 굵고 가는 선을 그리는 듯한 정가로 귀를 사로잡으며 연주가 시작되었다. 기욤 드 마쇼의 곡을 중동쪽의 비파 같이 생긴 악기와 발 받침대로 쓰던 작은 풍금 같은 악기로 연주하는데 음색이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십자가 소나타인데, 바로크 바이올린의 연주를 이렇게 극적으로 연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거트현의 악기로 격렬함이 나오니 진정성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예수가 마리아와 만나는 지점에서 나온 아리아 부분이 더 극적인 울림이 있었다. 이한솔 바이올리니스트는 올해 하인리히 슈멜처 국제콩쿨 바로크 바이올린 최초,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고 한다. 최근 본 바이올리니스트 중 진정 최고! 잘한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첫 마디부터 심장에서 무언가를 울컥하고 토해내는 듯한 연주였다.
바로크 그림에서 막 튀어나와서 연주하는듯한 첼리스트 장유진님은 나중에 인사할 때 보니 수수한 웃음이 매력적인 분이었다. 남미의 바로크 음악과 카운터테너의 음악까지 너무 매력적인 자리였다. 큰 규모의 콘서트장보다 음악은 이런 공간에서 들어야 한다. 우연히 바이올린 연주자 유리를 만나 유리가 연주자들과 한 명씩 인사를 나누게 해주었다. 마침 모두 유리와 잘 아는 사이었다. 소심한 관객인데 좋은 음악 들려준 연주자들과 인사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
(사진: 권택인)
내가 듣는 플리는
유튜브 속 최애 플레이리스트
비안코2025.02.03 04:30:57.80나에겐 언제고 들어도 질리지 않는 베스트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곡 중에서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부분을 들을 때면 언제고 소름이 돋는다. 그렇게 혼자만의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던 중, 어떤 이와 이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좋아하는 부분, 심지어 그 반응까지 너무 닮아 있었다. 이 대화를 시작으로 서로가 좋아하는 곡에 대해 이야기를 펼쳐 나갔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이 경험은 ‘음악 취향’이 맞았던 것 아닐까? 취향이라는 것이 정의하기 상당히 모호한 것이라, 이것이 서로 맞다는 것을 정확히 수치화하여 표현하기란… 당연히 어렵다.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드라마는 어떨까? ‘나는 로맨스를 좋아해’ ’나는 액션을 좋아해‘ ’나는 SF를 좋아해‘ 등과 같이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러다가 서로의 취향이 겹치면 우리는 몇 시간이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데 시간을 기꺼이 할애한다.
오프라인 환경에서 대화를 통해 주고받는 취향의 공유는, 이제 온라인으로 넘어온 것 같다. 심지어 온라인 상의 특정 대상과 공유하는 것도 아니다. 익명의 누군가와 교류한다. 혹은 일방적으로 내 취향에 맞는 음악들을 모아 찾아듣기가 훨씬 수월하다. 최근 늘어난 유튜브의 ’플리‘(플레이리스트) 콘텐츠를 보면 그렇다. 수많은 플레이리스트 채널이 있지만 그조차도 선택하는 취향이 제각각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빛내줄 노래들’ 조회수 399만회 (채널: 히조heejo), ‘자신감을 상실한 네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 조회수 148만회 (채널: SepLee 섭리) 등 콘텐츠 제목에서부터 묻어나는 취향은 조회수로 그 공감을 가늠해볼 수 있다.
조회수가 말해주듯이 내 취향의 플레이리스트가 나만이 아닌 다른 많은 이들의 공감도 산 거다. 수많은 게시물 중에서 나에게 꼭맞는 ‘플리’에 도달했을 때 주는 안도와 만족감은 내 음악 취향을 다른 사람과 공유 했을 때 느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플리를 그렇게도 찾아서 듣나보다. 나는 오늘도 유튜브 검색창을 켠다.
우아하고 옹골찬 턴 인 클래식
2024년 6월 15일 아트센터 인천 마크 민코프스키 & 루브르의 음악가들
호사2025.02.03 04:30:06.49음악을 듣고 나면 어떤 사람을 정의내리게 되는 한 단어가 떠오른다. 나에게 민코프스키는 ‘우아’이다.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우아하다’라는 단어는 민코프스키의 음악을 설명하기에 매우 적절해보인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바로크 작곡가 라모의 작품들을 모아서 ‘상상교향곡’이라는 것을 만든 것 부터 그는 이미 우아하다. 머리 속으로 당시 라모를 상상하고, 그의 음악들을 떠올려 마치 교향곡처럼 묶어서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그는 이미 낭만적인 사람임이 분명하다. 바흐는 이성적이고 착한 도덕선생님 같은 이미지라면 나에게 라모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프릴이 가득한 치마를 펄럭이며 한 손으로 한귀퉁이 치마를 부여잡고는 멋진 턴을 해보는 긴머리 숙녀같다. 모두 민코프스키 때문이다.
8년만에 내한한 그는 이번 공연에서 라모가 아닌 모차르트 교향곡을 선택했다. 이번에 연주된 39, 40, 41번 교향곡은 1788년에 작곡된 작품으로 모차르트가 하이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기 시작한 작품들이라고 볼 수 있다. 모차르트에게는 진지함을 알리는 시작이 된 작품들이다. 이제 나는 사춘기를 벗어나 진정한 성인이 되었다며 독립을 선언하는 느낌이었다. 민코프스키의 모차르트도 역시 너무나도 우아했다. 더불어 빠르고 옹골찬 스케일로 열정적임을 잃지 않았다. 프릴 치마 여인은 천천히 도는 것이 아니라 아주 경쾌하고 빠르게 몸을 돌렸다.
바로크 연주를 듣다보면 음량도 작고 악기도 예민해서 그런지, 연주자들이 살살 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렇게 많은 연주자들이 연주를 하는데, 소리가 저거밖에 안나온다고? 하면서 더욱 더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지휘자의 저 열정적 몸짓과 땀에 비례해서 오케스트라 소리의 볼륨이 저거밖에 안된다고 생각하며 갸우뚱한다. 민코프스키의 연주 역시 결코 모던 악기 연주만큼 볼륨이 크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한 음 한 음이 단단하고 옹골찬 느낌이다. 마치 치마를 펄럭이며 턴을 하려는 여성이 발목에 힘을 꽉 주고 턴을 해야만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그의 음악은 단단한 무언가가 있다. 특히 현악기 연주자들이 한몸처럼 움직이며 단단하게 발목을 잡아주고 있다. 반면에 목관악기들은 마치 솔리스트처럼 재량을 뽐낸다. 특히 이번 연주에서는 플룻, 클라리넷, 오보에 연주자들이 한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서 음악은 민코프스키의 열정적인 손짓에 결코 겉돌지 않고 단단한 중심축을 기반으로 돌고 또 돌았다. 교향곡임에도 마치 협주곡처럼 솔리스트들은 기량을 맘껏 뽐냈다. 원전악기로 구현해내는 그의 음악에서 활끝으로 뻗어나가는 옹골찬 소리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면 음악의 재미를 더 잘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분명 무대 옆 어딘가에서 빠른 턴을 돌고 있는 우아한 프릴 치마 여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꿈 같은 밤의 음악
<최수열의 밤 9시 즈음에>
OKG2025.02.03 04:29:32.39저녁이 밤으로 변하는 시간, 9시. 어느 계절이더라도 완연한 어둠이 찾아오고, 밤 공기도 확연히 차가워지는 때다. 야상곡, 밤의 세레나데, 밤의 노래 등, 많은 음악가가 제각각의 밤을 음악으로 채워온 것처럼 모든 밤의 모습과 성격은 서로 다르겠다. 그리고 그중 지휘자 최수열이 내세운 밤은 낯설고, 근사하고, 기괴하고, 환상적인 소리를 모두 포용할 수 있는 ‘꿈 같은 밤’이었다.
최수열은 2023년부터 이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나서 현대음악의 고전부터 오늘날 한국 작곡가들의 작품까지, 현대음악을 친절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소개해왔다. 그의 말은 ‘해설’이라기보다는, 입담 좋은 음악가가 진심으로 경험해온 현대음악의 매력을 풀어내는 솔직한 이야기에 가까웠다. 최수열은 헬무트 락헨만의 ‘구에로’가 얼마나 잘 들리지 않는지, 어떤 주법이 까다롭고 힘든지 등 작품에 대한 이야기부터 진은숙의 작품세계는 물론 진은숙과 메시지를 주고 받은 이야기 등, 음악가의 삶 안팎에 있는 이야기를 고루 들려줬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충분히 공유된 뒤 시작된 공연은 통상의 현대음악 공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서 펼쳐졌다. 이 음악에서 정확히 무엇을 들어보고 싶다는, 뚜렷한 관심이 생긴 후에 다함께 음악을 듣는 분위기는 그저 무정하고 실험적인 현대음악 공연장의 분위기와 같지 않았다.
줌을 한껏 땡긴 카메라와 확성장치를 통해 들었어야 했던 락헨만 <구에로>에 이어서는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퍼즐과 게임 모음곡’과 <구갈론-거리극의 장면들>이 차례로 연주됐다. 마치 앨리스처럼 주황색 큰 리본을 달고 나와 노래한 황수미와 TIMF앙상블의 협연으로 펼쳐진 ‘퍼즐과 게임 모음곡’도 더할나위없이 흥미진진했지만, 그 무엇보다 끝내줬던 건 마지막 곡 <구갈론>이었다. 리사이틀홀 무대를 가득 채운 악기들로 만들어내는 그 폭발적인 소리와 움직임, 소리의 잔향, 뒤섞이는 전통과 민속들, 페데리코 펠리니의 서커스와 동춘 서커스가 이상하게 뒤엉켜있는 것 같은 그 곡의 진풍경은 오직 실연에서만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쉽게 찾아오지 않는 만큼 더더욱 깨고 싶지 않았던, 환상적인 꿈 같은 시간이었다.
바로크 업고 튀어!
바로크 음악 공연 도전기
호사2025.02.03 04:29:02.79요즘 대세인 드라마가 있다. 바로 ‘선재 업고 튀어’라는 드라마다. 오랜만에 드라마 본방 정주행을 달리면서 나는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게 있었던가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고, 공부도 많이 했지만, 사실 대중음악을 훨씬 좋아하고 항상 드라마도 보고 가요를 듣는다. 그럼에도 내가 꼭 찾아다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바로크 음악’이다!
나는 바로크 음악을 좋아한다. 뭐 역사적인 얘기나 이론적인 말을 하고 싶진 않다. 원초적인 느낌으로 관객들이 숨죽이고 집중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바로크 음악은 음량도 작고, 악기들도 왠지 모르게 더 비싸보이고 특이하다. 소리는 모던 악기에 비해서 훨씬 부드러운데, 또 신기하게 음악들은 너무나 열정적이다.
처음에 바로크 음악, 특히 당대 악기로 연주되는 공연은 자의가 아닌 타의로 듣게 되었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적인 게 계속 찾아보게 된다. 본래 바로크 음악은 악보에 그려진 것 보다 연주자의 역량을 더 요구하게 된다. 그렇기에 공연을 하는 데 있어서도 연주자들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느낄 수 있다. 무대를 보면 연주자들이 어떠한 자세로 이 공연에 임하고 있는지가 보인다. (나도 한때 연주자였기 때문에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바로크 음악 공연에 참여하고 있는 연주자들이 얼마나 진심을 다해 이 공연을 대하는지가 느껴진다. 어쩌면 그런 이유때문에라도 바로크 공연을 찾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항상 그랬다. 주류보다는 비주류, 메이저보다는 마이너를 좋아했던거 같다. 그래서 시작한 드라마 ‘선재업고 튀어’였는데, 이미 초초대박 주류가 되었음에도 드라마를 놓을 순 없었다. 바로크 음악도 그랬다. 요즘엔 어디에서나 바로크 공연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바로크 악기들은 왜 이렇고 조율은 왜이렇게 오래하며.. 뭐 이런 얘기들을 설명하는 것조차 식상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아직은 나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바로크 음악! 아직도 갈 길이 멀어보이지만, 하나씩 배워나가는 걸로! 우리 모두 ‘바로크 업고 튀엇’!
차이콥스키와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민해경과 차이콥스키
본아리2025.02.03 04:27:04.4590년대 가요 이야기다. 유명한 클래식 작곡가 비발디. 비발디의 사계. 사계의 겨울 중 2악장. 그 2악장의 선율 위에 새로운 노래를 얹어 만든 ‘헤어진 다음날’이라는 노래가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은 열광했고 나는 탐탁지 않았다. 두 마디도 채 되지 않는 비발디의 선율이 계속 반복되는 걸 듣기 힘들었다. 머릿속에서는 다음 선율이 이어지는데 통 흘러가질 않으니, 음악이 고여 맴도는 느낌이었다. 오랜 시간 방송에서 꾸준히 들어온 덕에 괴로움은 사라졌다. 지금은 꽤 좋은 노래라고 생각한다.
80년대 가요 이야기다. 매체가 다양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찾아 듣기보다 그저 들리는 대로 들었다. 그 시절 가요는 어린 내게 분별없이 주입되었다. 가사는 몰라도 어지간한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었다. 인상적인 선율들은 각인되었다. 각인된 선율들이 호부 없이 내 안에 잠복했다. 시간이 흘러 음악 청취 경험이 늘면서 문제가 생겼다. 각인된 선율들이 생전 처음 듣는 곡에서 덜그럭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가벼운 의구심도 있었고 나만의 확신도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과거 위반 사례들이 줄소환 되었을 때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외국곡을 통으로 가져와 가사만 우리말로 바꾼 번안곡, 팝에서 일부를 따온 곡이 수두룩했다. 해소된 의구심은 후련함이 아닌 충격으로 다가왔다. 배신감을 느꼈다.
배신을 넘어서는 절망은 비교적 최근에 찾아왔다. 귀에 익은 가요 선율이 교향곡에서 흘러나왔다. 차이콥스키 5번이었다. 아주 오래전 가볍게 묻어 둔 의혹이 상기되었다. 이 곡을 성심껏 들을 기회가 없었고 좋아할 기회도 없었다. 전 악장을 골똘히 듣고 난 후 절망했다. 곡에 온전히 빠져들 수 없었다. 아름다운 선율에 매혹되고 극적인 정서에 도취 될 때마다 어김없이 그 가요 선율이 등장하여 감흥에 훼방을 놓았다. ‘헤어진 다음날’에서는 결코 이어지지 않는 비발디의 선율에 답답했는데, 이 곡에서는 바로 이어지는 가요 선율이 자꾸 떠올라 괴로웠다. 가요가 가져다 쓴(것으로 확신하는!) 그 선율은 이 곡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선율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중요했고, 기대보다 더 자주 등장했다. 두 마디의 주제, 혹은 동형진행을 포함하여 네 마디 정도 되는 그 선율은 ‘운명 주제’라고 불린다. 이 곡이 담고 있는 운명에 대한 차이콥스키의 통찰이 그 주제 선율의 변화에도 드러난다. 그걸 이제 알았고 가요 선율은 이전에 알았으니, 수동적 청취자였던 어린 시절의 내게 그 가요가 주입되었을 때 차이콥스키의 5번 교향곡을 온전히 감상할 기회는 이미 박탈되고 만 것이다.
절망의 예고편 같았던 그 가요를 다시 찾아 들었다.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이어 긴 세월 가누어 온 내 삶이 훑어졌다. 의도치 않게 맞은 운명은 만만치 않았다. 사랑의 힘으로 살았지만, 그마저도 늘 운명과 충돌했다. 그럼에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삶, 운명을 존중했다. 그리고 여전히 고군분투하지만, 운명과 화해하는 환희를 꿈꾸고 있다. 네 개의 문장으로 열거한 내 삶의 궤적은 차이콥스키 5번 교향곡 네 개의 악장과 닮았다. 운명에 대한 그의 통찰에 깊이 공감했다. 이 곡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온전히 빠져들 수 없게 된 것조차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음악과 관련된 생각을 하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유가 행진해 나갈 때 늘 마지막은 내 삶의 이야기와 맞물린다. 조금 바꾸어 말하면, 나에게 있어 음악에 대한 생각은, 삶에 대한 생각과 다르지 않다. 조금 더 바꾸어 말해 삶에 대한 생각을, 음악을 통해 할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차이콥스키 5번 교향곡에 몰입하고자 하는 나를 방해한 이범희 작곡, 민해경 노래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강력한 소격 효과로 작용하여 나를 현실로 끌어낸 이 곡이 여전히 몽상가의 기질을 버리지 못하는 나를 제대로 깨웠다.
마치 비엔나 궁정에 타임슬립한 기분으로
2024년 5월 2일 반포 심산아트홀 ‘황제의 음악’
호사2025.02.03 04:26:06.29요즘 대세 중의 대세는 ‘타임슬립’이 아니던가. 17세기 오스트리아 궁정으로 슝 날라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어떨까. 이번 공연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레오폴드 1세가 있던 시대에 비엔나 황실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대부분의 클래식 공연에 비해 이번 ‘황제의 음악’ 공연만큼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작곡가의 작품들로, 조금은 낯선 악기들로 연주되었다. 슈멜저, 비버, 하세와 같은 작곡가들과 더불어 레오폴드 1세가 직접 작곡한 작품까지, 남아있는 악보들과 새로이 발굴된 악보들로 구성된 이번 공연은 일반 대중에게는 조금 어색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플레져 드 무지크’의 얀 치즈마르 선생님의 공연 소개 멘트, ‘무지카 엑스 마키나’의 윤현종 선생님이 들려준 간단한 악기 소개 및 해설은 관객과 무대 사이의 간극을 한번씩 탈피하게 해주는 순간을 만들어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클래식 공연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에서의 단절된 경험이다. 우리는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핸드폰의 전원을 끄거나 비행기 모드로 바꿔둔다. 당분간 이 공연에 전념하면서 속세를 잊겠다는 다짐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신기한 악기군! 재밌는 곡이군! 연주를 잘하는 거 같은데? 드레스 너무 예쁘다. 오 외국인이다! 등등…
무대는 무대 나름의 새로운 세상을 노래하고, 관객을 마치 이 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무대를 쬐려본다. 한참을 그러다 보면 마치 무대는 무대대로, 나는 다른 세상에 그저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다. 그럴 때 갑자기 연주자가 우리에게 말을 건다. 앗, 연주자가 말도 잘하네? 우와, 외국인이 한국말도 잘하네! 그렇게 잠깐의 소통을 하다보면, 무대에서 울려퍼지는 노래가 마치 내 세상에서 울려퍼지게 된다. 잠깐의 소통이 그래서 너무 중요하다. 마치 비엔나 궁정에 타임슬립해서 왔는데, 한동안 사람들이 미래에서 온 나를 못 알아채다가 갑자기 대화를 하게 된 느낌이랄까. 지금 내가 함께 노래하는 이 음악들이 비엔나 궁정인지 심산아트홀인지 아무 상관이 없어지고, 우리만의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게 공연이다.
앗, 주저리주저리 떠들다보니 공연얘기를 하나도 못했군! 공연은 너무 좋았다. 인터미션 없이 쭈욱 진행된 구성도 좋았고, 첫곡과 마지막곡은 전체 합주가, 중간 중간에 솔로로 악곡 구성을 넣은 것도 좋았다. 테오르보 연주가 너무나 유연하게 콘티누오를 만들어내는 모습도 신기했고, 트라베오소와 리코더의 듀엣도 아름다웠다. 비버의 작품으로 연주하는 바로크 바이올린의 놀라운 기교는 정말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멀리서 찾지 말고 공연장에 오면, 그게 바로 타임캡슐이다. 자, 우리도 과거로 여행 한번 떠나보자. 그러다 보면 선재도 만나고 솔도 만나지 않겠는가.
*번외
이 공연에서 바로크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이한솔은 이후 오스트리아 멜크에서 개최된 슈멜처 콩쿠르에서 이 작품으로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전통과 현대를 오가는 21세기의 비르투오조, 세르게이 말로프
2024년 4월 23일, 예술의전당 IBK홀 세르게이 말로프 내한공연
SOKLEE2025.02.03 04:25:11.3320세기 거장의 덕목은 단연 ‘비르투오조’였다. 이는 경제성장기의 사회상이 반영된 것일지도, 냉전시대 자유진영과 공산국가간의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20세기 후반기 클래식계는 레코딩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걸출한 테크닉을 겸비한 음악가들의 연주를 박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21세기의 음악가들은 이렇게 쌓여 여전히 빛나고 있는 거장들의 연주 사이에서 자신을 알려야한다. 물론 전통적인 방식의 프로모션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름난 콩쿨에서 입상해서 클래식 작품들만 꾸준히 연주하는 아시아권 연주자들, 예컨대 조성진과 임윤찬이 그러하다. 하지만 최근 많은 연주자가 이제는 전통으로 남아버린 옛 작품들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전통적인 방법’만 고수하지 않는다. 세르게이 말로프 또한 그 중 하나다.
세르게이 말로프는 전통적인 비르투오조이지만, 동시에 여러 장르의 음악에 향한 관심을 토대로 바로크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는 공연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 ’어깨첼로’와 같은 시대악기와 전기 바이올린이 공존하는 일종의 하이브리드 ‘바흐 무반주 현악 작품 독주회’가 탄생했다. 여러 종류의 악기가 번갈아가며 연주됐던 공연은 그 퍼포먼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각종 이펙터를 조작하는, 흡사 록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만들 것 같은 움직임은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즐길 수 있는 요소였다. 무선 마이크와 픽업을 사용해 동선에 자유를 주고, 무대 뒤에서부터 등장하는 퍼포먼스를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재미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러한 흥미로움을 넘어, 이번 공연은 음악적인 측면에서 조금 더 기대해보고 싶은 점도 남겼다. 이번 연주에서는 꽤 작은 스피커를 사용했고, 이는 울림이 큰 콘서트홀에서 악기 자체의 음향과 전자 음향을 번갈아가며 비슷한 음량으로 들려주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비슷한 음향의 밸런스도 좋았지만 만약 이 공연을 전자음향을 즐기기 더 좋은 곳에서 이머시브한 음향으로 확장해 듣는다면, 음압에서 오는 전자음향적 쾌감을 더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마지막 곡이자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던 모음곡 6번에서 말로프는 각 곡 사이에 짧은 즉흥연주를 넣어 모든 곡을 잇는 방식으로 연주했다. 그 사이의 즉흥연주에서 루프스테이션과 이펙터가 대체로 유사한 방식으로 쓰였는데, 만약 말로프가 현악기를 다루는 뛰어난 테크닉만큼 전자기기 또한 정말 ‘그의 악기’처럼 친숙하게 다루게 된다면 앞으로 더 흥미로운 구성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작업은, 어찌보면 두 세계를 능숙하게 오갈 수 있어야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작업들보다 세련된 결과물을 내기에 훨씬 어려운 일이다. 세르게이 말로프가 첫 번째로 연주한 앵콜곡처럼, 짧게 여러 사운드를 재구축해서 음악을 만드는 것은 훨씬 효율적이고 재밌지만, 완성된 전체 작품 속에 새로운 것을 더해 재구성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도전을 끊임없이 해내는 그의 예술가적 실천에 찬사를 보낸다.
서울의 숨겨진 보석, 이색 공연장을 찾아서
공연을 다채롭게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공연장들
Muse2025.02.03 04:22:10.21보기에도 좋은 것이 맛도 좋다고 했다. 좋은 장소에서 듣는 음악은 우리의 감성을 돋구워주는 효과가 있어 기억에 남는 음악회로 만들어준다. 유럽 여행에서 제일 기억에 남았던 것은 티켓을 끊어 갔던 공연이 아닌, 선선한 날씨와 함께 해가 지는 야외를 안주 삼아 초록색 대문 문턱에 걸터앉아 들었던 한 부부의 버스킹이었다. 잘 어울리던 그때의 경치와 음악이 머릿속에 깊게 박혔는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베마리아를 들으면 그때가 생각나 아련해지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반적인 공연장도 좋지만, 요즘은 다른 장소를 공연장으로도 사용하면서 더 기억에 남는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몇 개의 공연장을 소개해본다.
덕수궁 석조전
서울 중심에 위치한 덕수궁 내의 석조전은 그 자체로 역사적인 예술 공간이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공연과 전시가 열리기도 하는 독특한 장소로, 궁중 문화와 서양 건축이 조화를 이룬다. 관객들은 국왕이 거닐었던 이 고궁에서 클래식 음악부터 현대 무용까지 다양한 공연을 감상하며, 석조전의 역사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이곳은 공연마다 특별한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99 덕수궁)
쌀롱 드 무지끄
부암동에 자리한 쌀롱 드 무지끄는 “거실 속 콘서트”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음악과 문화가 만나는 소규모 공연장이다. 이곳에서는 재즈, 클래식, 아방가르드 음악회가 정기적으로 열려 과거 18세기에 살롱 문화가 한창이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밖이 훤히 보이는 통창과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관객과 연주자가 가까이 호흡할 수 있는 이곳은 음악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든다.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129 2F)
중력장
흑석동에 위치한 중력장은 현대 예술과 실험적 공연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새로운 형태의 공연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30석 규모의 아담안 공연장이지만 현대 무용, 실험극, 인터랙티브 아트 등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이곳에서 창의적인 작업을 선보이며, 관객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예술의 경험을 제공한다. (서울시 동작구 현충로 104 4F)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서울의 역사적인 서소문 박물관에서는 기독교 순교자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공연과 행사가 열린다. 고요하지만 힘 있고, 무겁지만 아름다운 장소인 이곳은 깊은 역사적 의미와 함께 현대적인 공연기술을 접목하여 관객에게 역사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서울 중구 칠패로 5)
반줄 스테이지
종로구에 위치한 반줄은 앤틱 장식으로 고풍스러움을 뽐내는 카페와 갤러리 사이에 위치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노출 콘크리트의 인테리어 속에서 열리는 공연은 공간이 주는 느낌 만큼이나 관객과 좀 더 노출적으로 소통할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17길 23 3F)
문화비축기지
마포구에 위치한 문화비축기지는 구 석유비축기지를 개조하여 만든 독특한 문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공연, 전시, 워크샵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연중 무휴로 열리며, 특히 대규모 야외 공연이나 페스티벌에서는 서울의 젊은 예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친다. 산업 유산의 재활용이라는 콘셉트 아래, 이곳은 도시의 새로운 문화적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공연장이다.
서울의 다채로운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공연장은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예술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저 우리에게 익숙한 의자가 즐비하고 높고 넓은 무대를 볼 수 있는 공연장에서 벗어나 예술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서울의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들로, 야외를 돌아다니기에 요즘같은 최적의 날씨에 가볼만한 공연장이라 생각하여 정리해보았다. 요즘 같은 날씨에 나들이하며 꼭 방문해보기를 바란다.
음악을 이루는 ‘선’을 쫓는 여정
팀 잉골드의 『라인스』 를 여는 음악 이야기
OKG2025.02.03 04:21:13.09『라인스』는 선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 선은, 어떤 사상이나 지향점 같은 무언가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선이다. 가로로 넓게 뻗은 선, 세로로 길쭉하게 오르내리는 선, 음악에서 우리가 흥얼거리며 쉽게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선율선, 그 선율선들이 얹히는 오선이라는 다섯 개의 선. 인류학자 팀 잉골드가 선을 쫓는 여정을 담은 『라인스』에는 실과 직선에 대한 이야기부터 우리가 손으로 그리는 글씨의 선들, 우리가 걷는 여정의 선들까지 수많은 선들이 다뤄지지만, 그중 가장 첫머리에 놓인 것은 바로 ‘언어·음악·표기법’의 문제다.
팀 잉골드는 인류학자이자 오랜 시간 첼로를 연주해온 아마추어 음악가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제안하는 선에 대한 논의를 그 누구보다 직감적으로 이해했던 이들은 다름 아닌 현악 연주자들이었다고 잉골드는 말한다. 음악에만 머무는 책은 아니지만 『라인스』는 현과 활이 수직·수평으로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선적 움직임을 늘 마주해온 이들만이 가지는 어떤 감각을, 나아가 오선지 위, 선율이라는 선에 매달려 평생을 걸어가는 음악가들의 긴 여정을 떠올리게 한다. “정말로 선은, 삶처럼 끝이 없다. 삶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길을 따라 일어나는 그 모든 흥미로운 일들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이 갈 수 있는 더 먼 곳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선의 비교 인류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의 기초를 세우는 책이지만, 음악가들에게는 이미 그들이 오랜 시간 다뤄온 감각을 더 넓은 시각으로 풀어주는 그저 자연스러운 여정과도 같은 책이다. 음악으로부터 출발하는 이 여정이 어떻게 더 먼 곳으로 향하는지, 텍스트를 읽으며 함께 따라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환상곡’으로 가득했던 호기심의 방
음악학자 박수인과 피아니스트 제러드 레드몬드의 공연
호사2025.02.03 04:20:29.09‘쌀롱 드 무지끄 부암’에서 열린 <WUNDERKAMMER: 호기심의 방>이라는 제목의 호기심이 가득 생기는 음악회에 다녀왔다. 음악을 감상하는 데에는 공연장, 콘서트홀 만한 곳이 없겠지만, 이런 공간 역시 너무나 특별하다. 소문으로 익히 들었던 통창이 가득한 부암동 작은 골목 안 공연 장소인 ‘쌀롱 드 무지끄’는 웬만하면 자차를 이용하는 다리 부실한 나로서는 가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꼭 가보리라 마음을 먹고, 택시를 타고 갔다. 사실 버스 정류장 바로 앞이어서 교통편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걷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버스에서 내리는 일’이다…)
음악학자 박수인과 제레드 레드몬드 피아니스트가 함께하는 이번 공연은 해설과 한 시간 남짓의 피아노 독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항상 음악은 스토리를 알면 알수록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클래식 음악이 그러하다. 다들 클래식을 어찌 듣냐 궁금해한다. 그런데 클래식이야말로 알면 알수록 재밌고 신기하다. 이번 프로그램은 얀 스벨링크, 로베르트 슈만, 존 코릴리아노, C. P. E 바흐, 스크리아빈 등이었다. 다들 슈만을 제외하고는 누군가 싶을 거다. 바흐? 이 바흐는 그 바흐가 아니다. 그 바흐의 아들이다. 여러모로 뻔하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다. ‘환상곡’이라는 타이틀로 모인 이번 프로그램은 작품 하나하나가 굉장히 아름답고 유쾌하고 즐거웠다. 얀 스벨링크(1562-1621)의 <반음계적 환상곡>은 ‘이 시대에 이런 곡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유롭고 신비로웠다. J. S 바흐의 작품에 ‘신비’ 한 스푼을 담은 듯한 곡이었는데, 스벨링크는 J. S 바흐가 태어나기 120년 전쯤 태어난 훨씬 더 옛날 사람이다. 반면 존 코릴리아노(1938-)라는 작곡가는 현존하는 사람으로 5곡으로 이루어진 <환상 연습곡>을 만들었는데, 한 악장 한 악장이 너무 흥미로워서 ‘이 사람 천잰데?’ 싶었다. C. P. E바흐의 C장조 환상곡은 이번에 처음 들었는데, 정말 너무 재밌었다. 이렇게 유쾌하고 재밌는 작품이 있다니! 모차르트가 ‘(C. P. E)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다’라고 말할 만하다. 뭐 음악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음악의 아버지든 할아버지든 간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임은 분명하다. 물론 그 스타일은 너무나도 다르지만… 이렇게 천차만별 시대를 거스르는 음악이 이렇게도 하나로 통일되다니, 기획자와 연주자의 깊은 고심이 느껴졌다.
피아니스트 제러드 레드몬드는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줄여서, 대실작)에서 종종 연주자로 출연해서 피아노를 엄청 잘 치는 건 알고 있었는데, 60분 가까운 이런 대규모의 독주 프로그램도 이렇게 잘 진행할 수 있을지는 몰랐다. 그냥 피아노는 너무너무 잘 쳐서 이론도 공부하고 작곡도 하고 연주도 하는 그런, 완벽한 스타일의 사람 같았다. (성격도 좋아보였다….) 그의 연주는 엄청 섬세하고 부드러운 스타일은 아니다. 그에게 내 피아노는 못 맡길 거 같았다. 정말 손가락 힘이 어마어마하더라. 피아노를 다 삼켜버릴 거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만의 연주가 돋보였다. 보여주고 싶은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연주였다. 예전에 내 친구 입시 선생님은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한 음 한 음 또랑또랑하게 치라고!!!” 제러드 레드몬드는 ‘또랑또랑’이 아니라 ‘뚜랑뚜랑’하게 친다! 정말 음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슈만 작품은 살짝 안 어울렸다. 슈만의 작품은 이중인격의 다중이처럼 쳐야 하는데… 그는 모든 작품을 ‘제러드화’시켰다. 어쩌면 요즘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피아니스트임이 분명했다. 해설도 깔끔했다. 정확하고 분명한 느낌의 음악학자 박수인은 전체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는 해설을 보여주었는데 결코 지루하고 늘어지지 않았다. 중간중간 관객들과의 교감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음악을 경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혼자 음반을 듣는 것도 좋고, 큰 공연장에 친구들과 함께 가서 밥도 먹고 수다를 떠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이렇게 소박한 공간에서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도 괜찮다. 중간중간 이상한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뭔가 싶었는데 바람 소리, 버스 소리, 사람들 지나가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너무 어색하고 거슬렸는데, 조금씩 익숙해졌다. 어두운 관객석이 아니라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푸르른 하늘과 음악 소리가 함께 들려서 좋았고, 버스 소리와 함께 음악이 어우러져서 좋았다. 확실한 것은 직접 경험할 수 있었기에 좋았다는 것이다. 분명 음반이나 유튜브로 들으면 그 속의 연주자의 기량이 훠얼씬! 훌륭할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하진 않기에 오는 편안함이 있고, 함께 하기에 느끼는 따뜻함이 있다. 오랜만에 편안하고 따뜻하고 유쾌한 연주였다. 부디 집 밖을 나가서 어디든 가시길. 음악(=인생)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거장, 세르게이 말로프의 내한공연
'어깨첼로'의 세계
Sophie2025.02.03 04:18:52.582년 전 통영에서 만났던 기가 막히게 힙한 고악기 연주자, 세르게이 말로프의 무대가 다음 주 4월 23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다. 교향악축제가 한참이고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오픈하는 날이라 대진표가 좋진 않지만, 이색적인 무대로 좀 신선한 충격을 원하는 분들은 여기 꼭 가보시라고.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Violoncello da spalla)라는, ‘어깨 첼로’라고 불리는 악기가 있다. 옛날에 이현정 선생님한테 처음 얘기 듣고 재작년 통영에서 이 악기의 소리를 눈앞에서 처음 들었는데, 해외에서도 여전히 낯설고 많이 연주되지 않는 악기이지만, 쿠이켄(커위건)을 비롯해 시대악기 연주자, 학자들이 이 악기 소리와 레퍼토리 소화 가능성 등을 크게 열어놓고 있어 여전히 궁금한 게 많은 흥미로운 악기다. 루프 스테이션으로 재해석해 즉흥연주하는 아주 오래된 악기와, 아주 최근 악기(사운드)가 만나 진기명기한 무대를 선보인다. 통영에서 보신 분들도 꽤 많으실 테지만, 못 보신 분들은 더더더더 많으니.
‘어깨첼로’는 바이올린이나 비올라처럼 어깨 위에 얹고 연주하는 ‘첼로’이지만, 이현정 선생님 같은 첼로 연주자보다 바이올린 연주자가 다루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세르게이 말로프가 바이올린과 비올라 연주자이기도 해서 이 악기에 관심 갖고 집요한 연구를 한 것도 같은 맥락. 음색과 음역대도 낮은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에 가까운 악기다. 가슴 안에 품은 자그마한 악기에서 울려 퍼지는 저음 악기의 묵직한 소리는 비올라 혹은 첼로와는 다른 종류의 무게 있는 소리로 가슴을 울린다.
바흐 모음곡과 말로프의 즉흥연주가 나란히 연주됨으로써 고전과 현대의 경계가 넘나드는데, 단순히 악보에 따라 연주하는 것이 아닌 즉흥성이 아주아주 잘 가미된 연주라서, 뻔한(?) 프로그램에 지루함을 느꼈던 분이라면 이 거장의 무대를 꼭 한번 보시길.
“현악사중주를 듣는 귀는 그렇게 자라난다”
뮤리 살롱 첫 모임, 나성인의 베토벤 현악사중주 강연
Muree2025.02.03 04:17:41.29지난 3월 29일 금요일, 선유도의 스튜디오 라르에서 뮤리의 첫 번째 오프라인 행사가 열렸습니다. 주제는 베토벤 현악사중주의 그 시작과 끝. 베토벤의 첫 번째 현악사중주와 마지막 현악사중주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귀를 가져야 하는지, 음악 칼럼니스트 나성인의 탁월한 강연으로 알아가볼 수 있었습니다. 교향곡과도, 독주곡과도 다른 현악사중주의 고유함은 바로 음악가들이 가까운 곳에 마주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뮤리 살롱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뮤리에서 개최한 첫 행사였던 이번 뮤리 살롱은 많은 분들의 많은 분들의 참석 속에 무사히 마무리됐습니다. 차가 막히는 금요일 저녁 시간에도 다들 일찍부터 공간을 찾아주셨어요. 진지하기도,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때론 슬프기도 했던 그날의 강연은 우리가 베토벤을 더 가까이 이해하고, 그의 현악사중주를 보다 깊은 시선으로 이해하게 해줬습니다. 90분 동안 변화무쌍한 감정을 마주하며 들었던 그날의 강연을 기억하며, 베토벤 현악사중주를 긴 호흡으로 차근히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소리나는 촛불의 향연, 캔들라이트 콘서트
비발디 최고의 작품을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Siri2025.02.03 04:13:51.50내 MBTI는 ISFJ다. 그중에서도 I가 100%인 극 내향형 인간이다. 외출하는 건 정말 싫어하는데, 이 음악회는 가야겠다 싶었다. 아무리 내향형 집순이라도 재미있는 건 또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성향이라. 인터넷 어딘가였는지 버스정류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캔들라이트’ 광고를 보고난 뒤 재밌겠다는 호기심이 생겨났다. 음악회장에 촛불이라니,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한 번이었으면 그저 넘겼을 텐데, 여러 번 눈에 보이니 정말 가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지난 8월의 음악회는 이걸로 결정했다.
5시 반 연주를 보고 나온 후 다방면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왔지만, 일단 배가 고파 샤브샤브를 흡입했다. 샤브샤브를 먹고 고삐가 풀려 아이스크림까지 먹어버렸다. 그리고 배가 불러 후기도 못 쓰고 자괴감에 빠져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다음날이 되었다… 밀려드는 후회를 한쪽으로 고이 접어두고,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 기록해보고자 한다.
음악 전공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음악 기획자의 입장에서 음악회의 가장 중요한 점은 ‘음악의 퀄리티’다. 그런데 정작 내가 이번에 고른 음악회의 결정적인 기준은 시각적인 요소, 그리고 분위기였다. 심지어 프로그램도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어왔던 비발디의 <사계>가 아닌가. (더군다나 ‘겨울’의 2악장은 자꾸 가수 이현우의 노래 전주가 생각나서 짜증이 날 정도다.) 그런데도 오랜만에 음악회장을 가는 나의 발걸음은 꽤 설레었다. 비 오는 날을 싫어하지만, 그래도 지겹도록 꺾이지 않던 더위가 조금이나마 가셨기 때문이다. 또 장소가 성당이 아닌가. 성스럽기 그지없는 공간에서 촛불들이라니…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시간이 되어 연주자들이 나왔고 매 곡을 친절한 해설과 함께 연주하기 시작했다. 콰르텟 편성으로 멤버마다 한 계절씩 설명해주었다. 각자 좋아하는 계절을 담당한 줄 알았는데, 싫어한다고 한 멤버도 있어서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그냥 뽑기를 했나 보다. 확실히 전문 음악회장과 달리 소리가 매우 가깝게 연주하는 것처럼 들렸다. 마치 이들이 연습하는 장소에 잠시 방문해 구경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리허설을 체크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첼로 앞에 앉아서 첼로 소리를 본의 아니게 귀 기울여 듣게 되어서 친해진 느낌마저 들었다. ‘웃음’이란 의미를 가진 ‘리수스 콰르텟’은 전체적으로 쳐지지 않고 간결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음악가들은 깔끔한 연주로 1시간 남짓한 프로그램을 끝내고, 피아졸라의 <망각>과 <리베르탱고>를 앵콜로 연주를 마쳤다.
이날의 연주는 내 머릿속에 ‘소리나는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촛불이 가득한 성당 공간에서 검은 옷을 입은 네 명의 여성 사제들이 만들어 내는 콰르텟 음향으로 말이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2023. 08. 30 (수) 17시 30분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베토벤이 들었던 바로 그 바이올린 소리
4월 5일 예술의전당 ‘나레시오 콰르텟’ 내한공연
OKG2025.02.03 04:13:21.16피아니스트 톰 베힌은 음반 [Inside the hearing machine]에서 거대한 공명기가 부착된 브로드우드 피아노로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세 곡을 연주한다. 베토벤이 연주했던 특수한 피아노를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한다면, 당시 베토벤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그 소리와 가장 가깝게 베토벤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 거란 추측에서였다.
작곡가가 남긴 곡은 이미 악보로 남아있는데, 그가 들었던 ‘소리’를 추적하는 일이 과연 중요할까? 누군가는 그렇다고 믿는다. 그때 작곡가가 들었던 바로 그 악기 소리가 그 거대한 음악적 상상의 기반이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리는 울리는 동시에 사라진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그 소리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음악가와 연구자들은 당대의 기술적 조건과 관습을 두루 파헤치고, 그런 깊고 넓은 탐구를 바탕으로 그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을 해석하곤 한다.
그렇다면 바이올린은 어떨까. 바로크 바이올린과 모던 바이올린이 다르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 사이, 베토벤이 연주하고 들었을 18세기 말-19세기 초의 바이올린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이 더 많다. 시대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해왔던 악기의 조건은 그에 맞는 주법과 특유의 음악적 관습을 만들어냈고, 이는 당대의 음악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작곡가는 그 조건을 바탕으로 음악을 상상한다. 18세기에도, 19세기에도, 20세기에도 그 조건들은 끊임없이 바뀌어왔고 그에 상응해 음악도 함께 발맞추어 변화해왔다. 바이올린을 비롯한 여러 현악기들은 그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악기 중 하나다. 시대악기로 역사주의 연주(HIP, Historical Informed Performance)를 해온 이들 중 현악 연주자가 적지 않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나레시오 콰르텟(Narratio Quartet)은 19세기 음악을 ‘역사주의 연주’의 관점으로 살펴온 네덜란드의 현악 4중주단이다. 2009년에 결성 후 꾸준히 활동해오고 있는 이들은 시대악기를 사용해 베토벤 현악사중주라는 음악사의 정전을 깊게 탐구해왔다. 그렇게 베토벤의 음악과 함께한 시간만 10년에 달한다. 오는 4월 5일, 서울에서 이들이 10년의 연구 끝에 들려주는 베토벤 현악사중주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온다. 시대악기, 그리고 19세기의 비브라토와 포르타멘토로 만나는 베토벤 현악사중주는 어떤 소리를 들려줄지 귀 기울여보자. 어쩌면 그 소리는 베토벤이 들었던 바로 그 바이올린 소리와 닮았을지도 모른다.
공연장에서 기침 참는 법
관객을 위한 꿀팁
호사2025.02.03 04:12:35.15코로나 이후 질병 하나를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천식’이었다. 심각할 지경은 아닌데 사람이 너무 많은 곳에 가면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고, 심한 마른기침은 가끔 구역질로까지 이어졌다. 공연을 자주 보는 나에게 이 질병은 엄청난 제약임이 틀림없었다. 특히 공연장이라는 곳은 사람들이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서 엄청난 먼지를 일으키는 곳이 아닌가.
나는 공연 중 기침을 멈추기 위한, 나만의 가이드라인을 세우기 시작했다.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생수, 목캔디, 천식약 등. 이 준비물을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놓고 다음의 방법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1단계: 공연 시작시 나는 연주자들 등장과 함께 목캔디를 입에 넣는다. 캔디는 절대 깨먹지 않고 살살 녹여 먹는데, 잘하면 30분 이상을 버티기도 한다. 숨은 최대한 천천히 고르게 쉬고, 공연이 너무 좋아도 절대 흥분하지 않는다. 흥분하면 기침이 더 나오더라. 목캔디는 까서 먹지 않아도 되는 걸로 준비한다. 최근에는 종이박스에 들어있는 리콜라를 애용하는데, 뚜껑을 열 때도 종이라 거의 소리가 나지 않고, 사탕만 손으로 집어 입에 쏙 넣으면 된다. 공연 중간에 사탕을 먹어야할 때도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다.
2단계: 그럼에도 기침이 나올 것 같다 싶으면 내 손으로 목을 죈다. 그러면서 숨을 천천히 내쉬면 가끔 잦아들곤 한다. 숨이 잦아들면 조용히 생수병의 뚜껑을 열고 천천히 홀짝 하고 물을 들이켠다. 이때 물은 목구멍을 충분히 적시고 넘어간다는 느낌으로 천천히 조금만 마신다. 물을 다 마셔버리면 공연 중 물이 떨어질 수도 있고,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3단계: 그럼에도 목구멍에 뭔가가 걸린 것 같이 기침이 나올거 같다 싶으면, 앞주머니에 넣어둔 천식약 뚜껑을 살짝 연다. 이번엔 무대에 집중해야 한다. 무대에서 큰 음량의 소리가 나오는 부분에 맞춰서 재빠른 속도로 목구멍에 치직! 하고 약을 뿌려댄다. 그러고 또 숨을 천천히 들이 마신다. 그렇게 하면 웬만한 기침은 금방 잦아들게 된다.
나도 예전에 연주자였던 시절이 있었다. 대부분의 클래식 연주자는 한 번의 공연을 위해서 며칠, 몇 달, 몇 년을 연습한다. 이 한 번의 기회가 하나하나 얼마나 소중하고 심장 떨리는 일인 줄 알기에, 그들이 내 기침 때문에 공연 중의 마음이 흐트러지고 집중력을 잃게 하고 싶지 않다. 그들이 온전히 무대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클래식 공연장은 대부분 훌륭한 어쿠스틱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이때문에 관객들의 부스럭거리는 작은 소리도 널리 퍼지기 마련이다.
객석에 앉아 가방 앞주머니에 목캔디와 천식약, 생수 등이 꺼내기 좋은 위치에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캔디를 입에 넣는다. 이제 그들이 멋진 공연을 보여주기만을 기대하며 숨을 고르게 내쉰다. 이제 나는 멋진 공연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 (호사)
괴물, 소음으로 말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 *스포일러 주의
Siri2025.02.03 04:10:57.30작년 11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괴물>이 개봉했다. 한국 관객은 이 영화에 나름 열띤 반응을 보인 듯하다. 이 영화는 평범하게 여겨지지 않는 아이를 ‘괴물’로 취급하는 세상에서, “누가 괴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며 많은 이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그런데 이 영화, 소리마저 생각이 많아지게 한다. 배경음악이라고 할 수도 없고, 특정 물체가 등장해서 나는 소리가 아님에도, 영화 중간에는 내 귀를 관통하는 ‘소음’ 같은 것이 들린다.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이 소음은, 영화 말미에 이르러야 그 수수께끼가 풀린다. 소음은 다름 아닌 주인공 남자아이(요리)와 교장선생님이 호른과 트롬본을 부는 소리였다.
괴물이라고 불리는 요리, 그리고 그를 특별히 공감해 주지 않고 어쩌면 외면했다고도 할 수 있는 교장선생님이 우연히 음악실에서 만난다. 그런 그들이 만나 각자가 억눌러왔던 감정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그 감정을 악기를 불며 표출한다. 각자 호른과 트롬본을 불기 시작하지만, 특정 음을 연주하지는 않는다. 그저 숨을 내뱉을 뿐이다. 울부짖음이다. 고요하던 동네는 구슬픈 금관악기의 울부짖음으로 채워지고, 그 소리가 다른 공간에서 들려와 마치 뱃고동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영화의 여러 지점이 좋았다. 괴물이라 취급받는 이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세련된 스토리의 구성력, 아름답기까지 한 마지막 장면까지. 그럼에도 나에게 이 영화가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괴물을, 소음으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지금 살아있는 현재의 음악
‘In & Around C’ by 무지카 엑스 마키나
호사2025.02.03 04:10:33.48클래식 음악을 하다보면, 죽은지 백년 이백년 지난 사람들의 음악을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들어야하나… 현타가 올 때가 있다. 같은 악보에 기입된, 같은 음악 작품을, 여러 사람이 연주하고, 또 연주하고… 그들 사이의 개성이 드러나는 세밀한 차이를 (굳이) 발견해가면서 소소한 기쁨을 찾곤 하지만, 가끔은 죽은 음악에 이렇게까지 굳이 심폐소생술을 해가며 생명력을 집어넣어야 하는 생각 말이다.
2024년 2월 말 플랫폼엘 플랫폼 라이브에서 진행된 ‘In & Around C’ 공연에서 만난 음악들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음악이었다. 마치 양상추, 양파, 오이, 당근 등 싱싱한 야채들을 깨끗하게 세척한 후 ‘무지카 엑스 마키나’라는 드레싱으로 버무린 느낌이랄까. 각각 야채의 맛이 생생하게 살아있으면서도 든든한 느낌을 주었다.
이번 공연은 테리 라일리의 대표작 ‘In C’와 이로부터 출발해 무지카 엑스 마키나가 창작한 사운드 퍼포먼스 ‘Around C’ 두 작업으로부터 시작된 열 명의 각기 다른 장르의 음악가들(기타, 리코더, 모듈라 신스, 한국전통타악, 소리꾼, 가야금, 일렉트릭 기타, 세계타악, 바순/클라리넷, 쳄발로)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음악 무대가 함께 한 자리였다.
우리는 음악가를 작곡가, 연주자, 연출자로 나눠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이 모든 것이 통용되던 예전 시절과는 달리 요즘에는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있다. 그만큼 각각의 분야에서 신경 쓸 것이 많아져서이겠지… 생각하면서도 가끔은 그들 사이의 간극에 한숨이 쉬어지곤 한다.
하지만 이번 공연만큼은 이 공연을 만들어가는 음악가들이 작곡도, 연주도, 연출도 함께 만들어나갔다. 심지어 마지막 날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는 함께 한 관객들마저 공연 속에 함께 했다.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우리가 공연을 대한 게 언제였나… 우리는 언제 이렇게 음악을 온전히 우리 마음 속에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이번 공연은 그 무엇보다도 그 자체로 큰 울림을 주었다.
사실 굉장히 낯선 음악들이었을 것이다. 현대음악에 익숙한 나 역시도 이번 공연은 특이했다. 너무나도 각기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들이 한자리에서 호흡을 맞춘다는 점 또한 특이했다. 악보가 있는 듯 없는 듯, 서로서로 같이 호흡하고 눈치를 보면서 맞춰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신선했다. 단순히 ‘즉흥’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무슨 공연인지도 잘 모르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의 ‘무지’는 공연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관객 각각이 느끼는 ‘깨달음’이 컸을 뿐이다. 김혜민 선생님의 마지막 답변이 기억에 남는다. “그냥 오시면 돼요. 아무것도 모르셔도 돼요. 그냥 느끼면 돼요.”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음악이다. 바로 지금 현재의 음악이다.
조성진, 임윤찬이 쏘아 올린 작은 공
피케팅은 그만, 이제는 다른 공연에도 귀를 기울일 때
호사2025.02.03 04:10:05.79갑자기 클래식 팬이 확 늘어버린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콩쿨 우승과 함께 피아노 음악에 붐을 일으킨 조성진, 임윤찬 덕이 아닌가 싶은데, 나 역시도 한때 피아노 전공자로서 그들의 행보가 놀라울 뿐이다. 본래 파업이나 보이콧을 위해 피켓을 들고 진행하는 의사 표현을 의미했던 ‘피케팅’이라는 말은 ‘피를 부르는 티켓팅’이라는 의미로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그들의 공연은 순식간에 매진 사례를 기록하고, 나 역시도 그들의 공연 피케팅에 (슬프게도) 성공해 본 적이 없다.
너무 훌륭하고 좋은 기회다. 그들은 정말 멋진 연주를 보여준다. 하지만 피케팅에 뛰어드는 우리가 너무 편중된 것은 아닌가. 유명한 연주자들에게 너무 큰 집착을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은 연간 음악회가 빼곡 차있다. 하지만 유명 연주자와 그렇지 못한 연주자의 공연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여전히 유명하지 못한 연주자들의 공연은 티켓 판매는 커녕 자리 채우기에도 급급한 상태이다.
충분히 훌륭한 공연들이 가득 차 있다. 마치 OTT에 수많은 영화들이 가득 담겨 있듯이 공연장에는 매일 다른 공연들이 나름의 고뇌와 고심, 기획자들의 정성으로 가득 채워 만들어지고 있다. 클래식 음악에 마음이 간다면, 가까운 공연부터 시작해 보라 말하고 싶다. 유명한 사람들 공연 한두번 말고, 그냥 내 일상 속에 공연을 담아보자. 그러다 보면 어쩌면 우리는 공연으로 소소한 행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클래식 음악은 알면 알수록 그 즐거움이 배가 된다. 그것은 유명세로도 결코 채워질 수 없다. 조성진, 임윤찬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하지만 나는 다른 클래식 연주자들 역시 열렬히 응원한다!
좋은 사람이 만드는 좋은 음악
바리톤 김기훈 리사이틀
호사2025.02.03 04:09:12.36삼성 고 이병철 회장은 ‘사람이 기업을 만들고, 기업이 사람을 만든다’고 말하였다. 나는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이고 싶은데, ‘사람이 예술을 만들고, 예술이 사람을 만든다’이다.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하니, 나는 좋은 사람이 좋은 예술을 만들고, 좋은 예술이 좋은 사람을 키워낸다고 믿는다. 여기서 ‘좋은 사람’으로 생각나는 인물 중 한 명이 나에게는 바로 바리톤 김기훈이다.
처음 김기훈을 만났을 때 선한 인상과 눈웃음에 반했다. 또 그의 깊은 목소리와 점잖은 성품에 감동받았다. 본래 나이와 성품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믿는 나인데도 불구하고, 젊은 나이에도 느껴지는 진중함은 늘 놀라움을 주었다. 한 번은 나와 함께 공연을 만들었던 무대에서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였다. 당시 나는 그저 나에게 처한 힘든 상황과 어쩔 수 없는 분위기에 온몸의 기운이 싹 빠져나갈 정도로 영혼이 털려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차분함을 잃지 않았고, 극을 강직하게 이끌어 나갔다. 그 이후 나는 그가 출연하는 공연이라면 오페라고 리사이틀이고 시간만 맞으면 꼭 찾아가곤 했다.
영국 위그모어홀 데뷔 기념으로 이루어질 공연을 앞서서 한국에서 진행한 이번 공연은 독일, 한국, 러시아 가곡 등 세 나라의 언어로 된 가곡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하였고, 각각의 음악에 그 만의 매력을 가득 채워넣었다. 사람은 타고난 재능이 반, 노력이 반이라고 한다면, 타고난 재능을 가득 채워 젠 체 하거나 혹은 죽어라 노력하더라도 잘 안되어서 포기하거나 했을 수도 있는데, 김기훈은 엄청난 재능과 함께 또한 어마어마한 노력을 함께 하는 사람이라 생각들었다. 이번 무대는 엄청나게 세련되고 화려한 방식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나름의 진지한 마음이 가득히 느껴졌다. 오페라에서 무대를 종횡무진하던 그의 모습만 보다가, 오랜만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같은 커다란 무대를 오롯이 혼자 채우려 했으니, 얼마나 긴장했을까? 그럼에도 너무나 멋지고 따뜻한, 그리고 소중한 가곡 무대를 만들어줘서 너무나 고맙고, 앞으로도 좋은 사람 김기훈이 만들어 낼 좋은 음악이 더더욱 기대된다.
이유 있는 MZ들의 픽
히사이시 조 & 스즈메의 문단속 애니메이션 OST 콘서트
Muse2025.02.03 04:08:27.60요즘 공연장을 온-오프라인으로 보다보면 심심찮게 애니메이션 OST 콘서트 팜플렛을 볼 수 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청량한 느낌의 포스터, 그리고 지브리, 히사이시 조, 신카이 마코토 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애니메이션 OST는 필수로 들어있었다. 나는 이 애니메이션 OST 트렌드에 편승해보고자 공연장을 찾았고, 현장에서 맞이한 수많은 어린 친구들로 가득한 이 광경은 마치 활기찬 대학가에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적지 않은 티켓 가격임에도 합창석까지 찬 관객들을 보며 20대의 취향과 소비 문화에 대해 보도했던 뉴스가 떠올랐다.
20대의 주류 소비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는 기사였는데, 코로나 시대에 대학에 들어간 아이들은 거리두기와 격리로 인해 축제 문화를 즐겨보지 못했고,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홈술” 문화가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술을 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취향에 따라 소비하는 경향이 주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위스키의 소비가 늘어나 시장이 확대되었다는 것이었다. 한잔을 마셔도 더 가치 있게 마시는 것, 비교적 저렴한 소주와 맥주보다 더 비싼 위스키를 값지게 먹는 것, 즉 본인의 취향에 맞춘 소비를 즐기고자 하는 움직임이 늘었다는 것인데, 이것을 공연장에서도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1부의 프로그램은 애니메이션 순이 아닌 공연의 흐름에 맞춰 구성한 부분이 눈에 띄었는데, 이 부분에서는 “해설이 있었다면 이 흐름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겠다”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생각도 잠시, 아는 곡이 나오면 금세 추억에 빠지고는 했다. 이어폰을 통해서만 듣던 곡을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듣는다는 것은 또 다른 생생함을 주었다. 익숙한 OST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그 때 그 시절의 추억 덕에 몽글몽글한 시간에 빠져들었다. 초등학교 음악시간마다 틀어주시던 <원령공주>, 그 때 아이들과 놀며 나누던 대화, 그리고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하던 어린 시절의 나 까지. 콘서트는 단순 OST 연주를 넘어 그 시절의 나를 회상하게 하는 성냥팔이 소녀의 촛불이 되어주었다.
전체적으로 1부에서 히사이시 조의 노래는 아기자기함과 여름의 색채, 그리고 추억여행을 보여주었다면, 2부의 곡들은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할 수 있는 최대의 웅장함을 보여주어 웅장함에 압도되는 시간이었다. 히사이시 조 곡의 연륜을 따라가지 못하는 덕에 비교적 익숙함은 덜했지만 영화 속으로 끌어당기는 웅장함만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물론 애니메이션 OST를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지만, 무엇보다 내가 트렌드에 편승하고 왔다는 점에 괜히 뿌듯했고,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활기를 느껴보고 왔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온 공연이었다. 비교적 티켓 가격이 있었음에도 한번의 공연을 볼 때 가벼이 즐길 수 있는 공연들이 왜 나오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달까.
리코더, 만돌린, 고악기와 현대음악이 함께하는 현재
한화클래식 10주년 공연 <Unity>
OKG2025.02.03 04:07:12.52바로크 음악을 제대로 듣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는 공연, 한화 클래식. 올해는 10주년을 맞아 <Unity>라는 제목을 내걸었다. 바로크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면, 가장 단순한 협화음들이 그 어떤 음악보다도 아름답게 울리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Unity>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공연은 무엇보다도 그런 만남과 조화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조반니 안토니니가 이끄는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는 바로크 음악 특유의 살짝 낮고 고운 소리로, 화성의 기쁨을 이제 막 발견한 사람들처럼 연주했다. 아비 아비탈이 협주자로 나선 바르벨라의 협주곡에서는 만돌린의 낭랑한 음색과 더불어 여러 악기가 협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새삼 아름답게 다가왔다. 화성과 합주라는, 이제는 너무도 당연한 전제조건이 곧 아름다움을 만드는 비결처럼 느껴졌다.
이번 공연에서 음악가들은 우리를 리코더 소리를 듣고 오색찬란한 방울새를 떠올릴 수 있었던 시대로, 화성 바깥의 음을 썼을 때 절묘한 아름다움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처음 만난 한 작곡가의 마음속으로 데려다놓았다. 그리고 동시에, 이 오래된 악기들이 꼭 오래된 음악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한국 피리로 드론 사운드를 구현했던 솔리마의 ‘쏘 So’와 앙코르로 연주해 엄청난 환호를 받았던 BTS의 ‘다이너마이트’(공연날은 마침 BTS 멤버들의 입대날이었다)에서 이 악기들은 현재와 마주하며 기분 좋은 새로움을 만들어냈다. <Unity>는 고음악의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만든 공연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연주를 듣고 내가 마주한 것은 유서깊은 무언가가 아니라 발견과 발명의 기쁨, 그리고 새로움을 마주하는 감각이었다.
음악과 무용, 그 상관관계에 대하여
팀프 앙상블과 아트프로젝트보라의 발레메카닉 리뷰
Siri2025.02.03 04:04:47.06화려한 몸짓은 우리의 눈을 사로잡고, 그와 함께 들려오는 세련된 음악은 우리의 귀를 사로잡는다. 춤과 음악의 긴밀한 관계는 지금 시대에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당대 무용수들의 춤을 무보로 기록해왔고, 이때 함께 기보됐던 미뉴에트, 가보트 등의 음악 또한 지금까지 전해져온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무용과 음악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게이다. 이렇게만 보면 음악은 춤의 보조적인 역할만 담당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춤 없이도 연주되는 악곡이 있다. 바로크 작곡가 바흐의 경우 이러한 곡을 모아 <프랑스 모음곡>, <영국 모음곡>, <무반주 첼로 모음곡> 등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순수하게 작곡된 음악에도 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을 수 있다.
바흐의 시대로부터 약 250년이 지난 지금, 춤과 음악의 관계는 바뀌었을까? 여기에 대해 깊이 고민한 예술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공연을 만들었다. 팀프 앙상블과 아트프로젝트보라의 <발레메카닉>이다. 스티브 라이히, 테리 라일리를 비롯해 총 6곡의 현대음악 작곡가의 작품이 연주되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위해 무용이 새롭게 구상 되었다. 서로 다른 작곡가의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의 연주는 악기를 세팅하는 순간부다 심지어는 인터미션까지도 단절되지 않아, 음악회 전체가 하나의 작품과 같이 느껴졌다. 연주자들 사이로 규칙적이거나 때로는 자유롭게 넘나드는 무용수의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음악속으로 녹아들었다. 이 공연에서는 음악이 주가 되지도, 무용이 주가 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무대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연출로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듯했다. 이 무대에서 음악과 무용은 서로가 서로를 뒷받침하는, 상호보완적이면서도 동등한 관계였다.
뇌의 힐링 하모니: 신경 안정과 집중을 위한 선율 – 전문의 윤선생
10인의 전문가가 선물하는 음악 여행
Muree2024.12.11 03:50:09.66감정과 육체가 공존하는 특별한 공연
호사2024.12.06 05:12:05.984명의 현대무용가가 ‘노화하는 몸’을 말한다. 2023년 9월 12일,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열린 공연 <노화하는 몸>에서다. 귀를 통해 전달되는 감정에 주로 의존하는 음악 공연에 비해, 무용 공연은 출연자도 감상자도 내 육체 전신 구석구석을 열렬하게 공연에 참여시킨다. 그러기에 무용가 네 명이 말하는 ‘노화’를 지켜보자면 나 역시 같이 늙어가는 기분이 들 것이다. 무용가 네 명은 몸짓으로 말을 하면서, 침묵을 포함한 사운드, 음악들로 무대를 채운다. 그러기에 이 공연을 단순한 무용 공연이라고만 할 수 없다. 특히 남정호의 <달에게 물어봐>에서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종지 없이 처음부터 계속 반복되면서 끊임없는 생에 대한 미련을 드러낸다. 감정과 육체가 공존하는 특별한 공연.
고종의 장소에서 만나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
OKG2024.12.06 05:11:17.67누리 콜렉티브는 ‘지속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잊힌 옛 음악을 발굴하여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시대연주 단체다. 2023년 9월 7일, 누리 콜렉티브는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이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연주를 진행했다. 한국에서 건설된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그곳은 네모난 홀과 그 위를 둘러싼 복층 구조로 이루어진 2층짜리 공연장이었다. 묵직한 카펫과 부드럽고 큰 나무 손잡이, 격자무늬 나무 바닥, 그리고 벽을 가득 채운 20세기 초 서양식 장식들까지, 근대화 시기의 산물이 틈틈이 배어있던 곳에서 음악가들은 비발디와 하세, 제미니아니, 만치니 등 여러 작품들을 연주했다.
음악가들의 연주는 자연스럽고도 아름다웠고, 그곳에서 울려퍼지는 옛 악기 소리들의 음향도 공간과 더없이 잘 어우러졌다. 틈틈이 음악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던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의 해설과 연주자들의 말들도 공연을 차근히 따라가는 데 도움이 됐다. 누리콜렉티브가 여러 편성으로 바꾸어가며 들려준 바로크 음악은 틈 없이 훌륭했다. 연주자들은 멋진 한복을 입고 있었다. 이들의 공연은 이 음악과 이 장소가 살아 숨쉬었던 두 시대를 동시에 우리의 눈앞에 불러오는 듯했다. 잊혔거나 잠들어있었지만 그럼에도 풍성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던 것들. 그것들을 누군가는 애정어린 눈으로 들여다보며, 다시 우리 시대로 불러내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다.
해설, 흐트러진 음악을 정리하다
Siri2024.12.06 05:10:42.23라틴, 아일랜드, 쎄씨봉, 여자, 그리고 주기도문… 서로 아무 관련 없는 주제가 한 음악회에서 연주됐다고 하면 믿을 수 있는가? 바로 그 연주회가 지난 9월, 영산아트홀에서 있었다. 경복고등학교 동아리에서 시작한 ‘경복 글리 앙상블’ 정기연주회였다. 남성 중창단이라면 한 번쯤 연습해보았을 곡들이 차례로 연주되던 찰나, ‘해설자’의 등장으로 이 연주회는 새로운 길을 가게 된다. 그는 곡의 순서를 알려주는 진행자가 아니라, 이 중창단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연주회를 위해 어떻게 연습했는지를 알려준다. 연주회에 온 모든 관객을 음악뿐 아니라 그들의 ‘스토리’에 초대하는 해설이었다. 해설자는 혼란스러웠을 수도 있을 그 프로그램을 자연스레 묶어주었고, 청중을 경복글리앙상블이 걸어온 지난 여정으로 초대했다.